아침부터 너무 힘든하루다. 남편이 오늘 술 약속이 있는데 하루종일 혼자 유건이를 봐야한다는 압박감이 유건이에게도 느껴졌을까? 아빠 출근할 때쯤 분유를 먹은 후 9~10시까지 자는 아이가 잠을 자지 않고 보챈다.

  더운가? 해서 바지를 벗겨두니 잠깐 좋아하다가 이내 또 울기 시작했다. 늦게까지 혼자봐야하는데 벌써부터 이러니 진짜 아찔해진다. 그래도 유건이가 울 때는 뭔가 불편하고 울어야하는 이유가 있는거니까 최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속이 불편한가 싶어서 배 위에 올려놓은 후 터미타임도 시켜주고 안아주기도 하고 잠깐씩은 좋아하다가 이내 짜증을 부리고 또 낑낑대기 시작한다.

  그렇게 2시간 가까이 씨름을 하고 힘이 들어 거실로 나가 책을 읽어주려고 자세를 잡으니 갑자기 안하던 트림을 하고 분유덩어리를 토했다. 이게 있어서 답답했구나 역시 이유가 있었다. 토한 후 어느때보다 잘 자는 유건이다. 다행이다 정말 ^^

  유건이가 잘자서 안심했는데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잠에서 깬 유건이의 분유텀이 돌아와 분유를 먹이는데 조금 먹다가 안 먹는다. 중간중간 계속 고개를 휙휙 돌리며 먹기를 거부하는 유건이 덕분에 분유 먹이는데만 40분이 넘게 걸렸다. 분유는 실온에 오래 두면 안되기 때문에 안 먹는 분유는 버리고 새로운 젖병에 다시 타서 160ml을 채워 먹였다. 워낙 잘 먹는 아이라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안 먹으니까 너무 힘들다. 늘 안먹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정말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분유텀이 돌아올수록 더 안먹고 울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한동안 안 먹였더니 모유조차도 안무는지경까지 아침에도 이렇게 먹었는지 남편에게 물어봤는데 아침에도 그랬다고 한다. 어제까지만해도 160ml을 잘 먹던 아이가 하루아침 사이에 이렇게 휙 변할수가 있는걸까? 유건이가 큰만큼 분유병의 젖꼭지가 작아져서 우유가 잘안나오니 짜증나서 안먹는 것이라 추측해 젖꼭지를 주문했다. 주문한 젖꼭지가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 버틸지 막막하다. 또 만약에 젖꼭지 문제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저녁 약속이 있는 남편이 마음에 걸렸는지 30분 일찍 퇴근해 유건이 목욕도 시키고 나도 유건이가 목욕을 하는 동안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아침 카스테라 한 조각, 점심 카스테라 두조각, 만두, 저녁 돼지족에 끓인 만두국과 식빵이다. 오늘 3끼 다 거지같이 먹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남편이 일찍 와줘서 덕분에 저녁은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사실 하루종일 지쳐서 저녁을 먹을 생각도 없었지만 혹시라도 밤에 유건이가 젖병거부 상태를 지속하면 모유라도 먹여야해서 억지로 먹었다.

  남편은 약속장소로 나가고 저녁에 80ml밖에 먹지 않은 유건이는 생각보다 잘 자주었다. 그래도 유건이가 언제 일어날지 몰라 끙끙대며 대기를 하느라 편히 쉬지를 못했다.

  대기하는 동안 주문해뒀던 티단추와 티단추기구를 열어본 후 유건이 턱받이에 티단추를 달았다. 가시도트보다 훨씬 낫다. 떨어지지도 않고 동글동글한 플라스틱이라 가시도트보다 안전할 것 같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티단추를 달 때 힘을 많이 써야하는가? 팔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남편이 떡볶이만 먹고 바로 온다고 전화를 했었는데 10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유건이의 젖병거부 사태가 지속되면 오늘 밤에는 못잘듯 싶은데 10시가 넘을 줄 알았으면 나도 유건이랑 그냥 잘 걸 그랬다.

  11시 57분 드디어 유건이가 깨어났고 밥달라며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먼저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을 주려고 유건이를 안았는데 팔에 너무 무리가 간다. 오전에 달래느라 계속 안고 있었고 밤에 티단추를 단게 화근인듯 싶다. 유건이를 안을 수 조차 없었다. 남편은 계속 잠만자고 겨우 낑낑거리며 유건이를 들어 기저귀를 갈았다.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러가는 동안 남편이 일어나 유건이를 달랬다. 남편에게 오빠가 분유먹일거냐고 물으니 왜 성질을 내냐고 내가 먹일테니 째려보지말고 자라고 했다. 유건이는 여전히 젖병거부상태지만 그래도 남편이 강제로 먹여서 160ml 다 먹었고 다행히 잘 잘 것 같다.

  얼마 전 코피가 이틀 연속으로 나고 엄지 손가락도 사용할 때마다 너무 아프다. 엄지 손가락은 내가 무리하게 옷을 만들고 가시도트를 빼내느라 그런거겠지? 거기에 오늘은 팔까지 안들어지니 미치겠다. 회복을 해야하는데 내 몸은 더 안좋아지고 있고 유건이를 돌보려면 체력을 키워야하는데 운동은 커녕 밖에 나갈 수조차 없다. 밥 챙겨먹는 것부터 부실하니 좋아질리가 없다. 난 그저 내 몸이 안좋아 예민했을뿐인데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일찍 와서 유건이도 씻기고 나도 저녁을 먹을 수 있게 시간을 벌어준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술 먹고 온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 말도 안했는데 나한테 화를 내니 마음이 안좋았다.

  방에 있기 답답해서 거실로 나와서 북클럽도 찾아보고 원데이공방도 보고 연극과 음악회 일정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엄마표 영어 라이브방송이라도 볼 수 있도록 책을 읽었고 주말에 만들다가만 유건이 우주복도 조금씩 만들었다. 천이 얇아 자꾸 말려서 바느질이 좀 씹혔다. 바이어스도 달아야되는데 바이어스는 영 소질이 없다. 계속 만들어야할까 고민이 된다. 지금 가지고 있는 패턴과 유건이가 입고 있는 우주복을 가지고 바이어스 없이 만들도록 응용해봐야겠다.

  나도 속상해서 거실로 나온 것이지만 밤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풀리는 것 같다. 당분간은 유건이를 봐야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100% 할 수 있지는 못하겠지만 이렇게 간간히 밤의 일탈을 하면 refresh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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