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딩턴이 검진으로 남편이 연차를 냈다. 요즘 기분이 우울한 나는 어렸을 때 읽었던 창작동화책인 다섯그루의 라일락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잠에서 깼다. 육아를 하는 것은 어렸을 때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기성찰을 하는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렸을 때 기억이 거의 없는데 기억이 날 때면 뭔가 아련하고 애틋하고 슬픈 기분이 든다. 그 시절 젊은 엄마, 아빠 어린 나와 오빠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니까 이제 결혼도 했고 나만의 가정이 생겼는데 다시는 친정식구들과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문득 슬퍼졌다.

  1시간 정도 멍하니 있다가 울다보니 남편이 일어났다. 딩턴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남편과 얘기하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혼자있을 때는 너무 우울하다. 남편과 2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다가 딩턴이를 데려왔다. 딩턴이 밥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고 아침을 먹고는 딩턴이 검진을 위해 예약시간에 맞춰 병원에 다녀왔다.

  꽁꽁싸맨 겉싸개를 풀고 체온과 몸무게를 쟀다. 이제 체중은 태어날 때 체중을 회복했다. 황달검사 후 딩턴이 설소대가 붙었다고 해서 수술을 했다. 2초면 끝나는데 100일이 넘으면 전신마치 후 잘라야한다고 한다. 지혈 후 2층으로 가 선천성대사증후군 검사를 받았다. 그 조그만 발에서 피를 빼내고 짜는데 딩턴이가 울어서 속상했다. 사실 찌르는 것보다 알콜솜의 차가움을 더 싫어하는 것 같다. 나중에 좀 더 커서 병원에 가면 주사 맞기 싫다며 찡찡거리는 딩턴이 모습이 상상이 된다.

  검사 후 조리원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싸준 김밥과 반찬을 들고 아빠가 조리원을 방문했다. 현금 100만원도 축하금으로 주셨다. 아빠는 물건을 전해주고 딩턴이를 한 번 안아보고는 같이 김밥만 먹고 금방 가버렸다. 여유있게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서운했다. 엄마가 며칠 전부터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계속 물은 후 세심하게 바리바리 싸준 음식들을 보니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원래 조부모 방문은 조리원에 있는 동안 양가 1회만 가능한데 엄마는 상가집에 다녀온 지인과 식사를 했다고 부정탈까봐 못오겠다고 하셨다. 엄마도 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음식을 싸주며 와보지 못하는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내가 출산할 때도 그렇게 오지말래도 걱정이 된다며 굳이 와서 밖에서 기다린 엄마...내가 엄마가 되니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남편이 소아과에 가서 딩턴이 검사결과를 알아왔는데 황달수치는 떨어지고 있고 몸무게도 잘 늘고 있어 건강하다고 하셨다. 딩턴이 혈액형도 확인했다. 혈액형은 당연히 O형이다.

  2시부터 조리원에서 하는 신생아 목욕법 수업을 남편과 함께 들었다. 특별한 순서는 없지만 가장 깨끗한 곳에서 더러운 순으로 입부터 시작해 얼굴, 머리, 몸, 엉덩이 순으로 씻기고 5분 ~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옷을 미리 벗겨 놓으면 놀라는 아이가 있으니 팔만 미리 빼고 씻기라는 팁도 주셨다. 지금은 조리원에서 전적으로 씻겨주시는데 집에 가면 한 차례 멘붕이 오지 않을까 싶다.

  수업 도중 조리원에 온 이후로 계속 혈압이 높아져서 주치의 원장님과 상담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결과는 아직 혈압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고 3주 정도 오락가락할 수 있으니 증상이 없으면 약처방은 일단 보류하시겠다고 하셨다. 12월15일까지 혈압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 때는 다시 내원을 해야할 것 같다.

  진료 후 방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조리원 프로그램 중 딩턴이 사진촬영을 하고 왔다고 했다. 옷과 소품도 입혀놓고 포즈를 취한 모습이 애교쟁이같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런 꼬마 딩턴이 집에 가서도 얌전하게 순딩순딩했으면 좋겠다. 

  4시쯤 대학 후배가 면회를 왔다. 우리보다 빨리 결혼해 작년 5월에 첫째를 낳고 둘째를 임신중이다. 맨날 파랑파랑 선물만 받을 것 같다며 노란색 수면 내복을 선물로 주었다. 임신한 몸으로 부산에서 1년 6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KTX로 청주에 혼자 온 내 후배 10kg가 넘는 아이를 안고 오려면 힘들었을텐데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도 시간이 좀 지나면 딩턴이를 데리고 그렇게 다닐 수 있을까? 육아선배답게 여유가 느껴져서 부러웠다. 남편은 내가 오랜만에 다른 사람처럼 웃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역시 조리원에 갇혀 있으니 조금 답답한 느낌이다.

  방에 와서 답답한 마음에 TV를 켰는데 전지적 참견시점을 보다가도 펑펑 울었다. 임산부일 때는 재밌게 봤었는데 예능을 보고도 눈물이 흐리니 너무 슬퍼지고 서글퍼져 남편에게 TV를 꺼달라고 했다. 감정조절이 너무 안 되는 것 같다. 남편에게도 너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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