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6시다. 오늘은 병원도 가고 하동도 가야하기 때문에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일어난 김에 인터넷 강의를 들을까? 생각만 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 넘치지 못한 학구열은 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결국 6시 30분에 일어나서 일단 차근차근 짐을 챙겼다. 원래 속옷과 양말을 챙기는 전용 파우치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게 있어야 편한데 15분 쯤 찾다가 포기하고 다른 파우치에 속옷과 양말을 넣었다. 원래 전용 파우치가 아니다보니 좀 작은 것 같다.

  파우치 찾기 덕분에 예상시간보다 밥은 15분 늦게 먹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소불고기를 볶고 어제 일부러 아침까지 해서 얼려둔 밥을 전자렌지에 데웠다. 남편은 마지막 남은 소불고기가 여간 아쉬운게 아닌 것 같았다. 다음에 꼭 더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밥을 먹고 나는 설거지를 하고 남편은 먼저 씻었다. 남편이 씻고 난 후 나도 씻고 화장품들을 바른 후 짐 가방에 챙겨 넣었다. 아침부터 짐을 챙기고 정신 없이 분주한데 남편은 여행갈 플레이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아직 옷도 안 갈아입고 있길래 "남편 굼떠, 오늘 너무 굼떠." 연신 구박을 해줬다.

  8시 20분에 병원 출발하자고 하더니 굼뜬 남편 덕에 15분이 지체됐다. 원래 예약은 내일인데 하동에 가야해서 오늘은 예약없이 대기를 해야한다. 다행히 대기번호가 3번이어서 생각보다 빨리 끝나겠다며 좋아했는데 역시나 주치의 원장님의 인기가 워낙 많아 1시간 대기 후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딩턴이는 어제 아빠의 요청대로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다. 움직임이 심해 초음파가 계속 흔들려 잡기도 힘들 지경이고 원장님도 애기가 유난히 많이 움직인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태어나서 엄청 에너제틱할까봐 저질체력인 나는 벌써부터 겁이 난다. 성별은 역시나 아들이었다. 태몽이 애매하긴 했지만 단 한 순간도 딩턴이가 아들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기에 특별히 놀라진 않았다. 남편은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 없다고 말은 했지만 내심 첫째는 아들이길 바랬기 때문에 더 좋아했다.

  안 그래도 여쭤보려고 했는데 원장님이 먼저 몸무게가 왜 이렇게 빠지냐고 물어보셨다. 오늘 17주 2일차이고 오늘자 아이랑스토리에서도 '엄마 몸무게는 4.5kg에서 5.5kg이 느는게 정상입니다.' 라고 알림이 왔지만 난 2.5kg이 빠졌고 병원 갈 때마다 최저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다. 일부러 식단 관리를 하고 있고 채소도 많이 먹고 간식을 안 먹는다고 말씀드리니 안 좋은 것들 먹으며 살 찌는 것 보다 낫다고 괜찮다고 말씀해주셨다. 딩턴이 무게도 주차대비 정상이라고 하시니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싶긴한데 남편은 양을 조금만 늘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매일 세 끼를 영양을 고려해서 다 챙겨 먹긴 하지만 적게 먹을 때는 1,100칼로리, 보통은 1,500칼로리 수준으로만 먹고 있기 때문에 양을 늘리긴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만삭이 되면 최소 10킬로는 찔텐데 무릎이며 관절이 안 좋아질까 걱정이 된다. 임신 전 체중관리를 했었어야했는데 회사 다니다보니 커피믹스도 달고 살았고 외식도 자주 했었다. 진작에 그만두고 몸 관리를 했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딩턴이가 없을 때 관리 했으면 2.5킬로가 아니라 5킬로는 넘게 빠졌을텐데 닥치지 않았는데 미리 하는 것은 미루기 좋아하는 나한테는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집에 가서 계란을 2개 삶고 호밀빵을 토스트한 후 잼을 바르고 포장을 해서 챙겼다. 휴게소에 가서 고삐가 풀릴까 싶어 집에서 준비한 건강한 음식으로 요기를 할 생각이다. 남편은 창 유리가 너무 지저분하다며 내가 음식을 챙길 동안 세차를 하고 왔다. 이제 드디어 하동으로 출발이다. 가는 길에 엄마와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는 첫째는 딸이 좋은데라며 말을 흐렸는데 한 번도 티낸적 없지만 내심 딸이길 바랬나? 어머님은 아들, 딸 상관 없다고 하시긴 하셨지만 아버님이 아들이길 바라신 것 같기에 좋아하셨다. 애기도 건강하다고 하니 태교를 너무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하동에 놀러갈 거라고 말씀드리니 남편에게 꼭 내가 먹고 싶은거 저녁에 사주라고 용돈까지 보내주시고 운전 살살하고 잘 데리고 가라고 신신당부까지 하셨다. 사랑 받는 며느리인 것 같아 너무 감사했다.

  하동 가는길에 벌곡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 역시 다른 유혹은 다 이겼는데 떡볶이에 KO했다. 떡볶이와 집에서 가져온 호밀빵과 삶은 달걀을 함께 먹었다. 원래 삶은 달걀은 떡볶이 친구이니 맛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떡볶이가 그냥 먹고 싶어 샀지만 삶은 달걀을 챙겨온 내 센스가 갑자기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밥을 먹고 남편에게 아메리카노를 사 먹자고 꼬셨다.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나 먹고 싶다는 말에 남편이 바로 사줬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한 잔만 사서 조금만 뺏어 먹었다. 원래 여행길엔 늘 아메리카노가 함께했는데 임신을 하니 카페인이 걱정되서 정말 간만에 마시는 커피이다.

  휴게소는 벌곡 한 군데만 들리고 바로 하동 쌍계사에 갔더니 2시 30분에 도착했다.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는데 오르막이라 유난히 숨이 찼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몇 번이나 쉬면서 올라갔다. 임신 후 평지는 40분씩 걷기 운동을 했지만 오르막은 처음이므로 다리에 알이 배일 정도였다. 숨이 턱턱 막힐 때 쯤 도착했는데 목이 너무 말라 절 안에 있는 매점에서 헛개수를 구입하였다. 곳곳에 지하수를 떠먹을 수 있는 시설이 있었지만 혹시나 탈이 날까 안전하게 구입한 음료를 마셨다.

  쌍계사 안에는 하동 8경 중 하나인 불일폭포가 있는데 거기에 도달하려면 1시간 30분의 오르막을 더 올라야해서 30도가 넘는 날씨에 임산부인 내게는 무리인 것 같아 불일폭포 관람은 포기했다. 쌍계사 대웅전까지만 관람했는데 대웅전은 보물 500호로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연등이 금색으로 달려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또 인상적인 것은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는데 이상하게 대웅전 앞에만 가면 마치 에어컨을 켠 것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특이한 건축기법을 써서 건축한 것은 아닌지 뭔가 신비감마저 느껴졌다.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로 쉬면서 쉬엄쉬엄 내려갔다. 임신 전에는 그래도 제법 잘 걸었는데 확실히 내가 임산부이긴 한가보다. 주차장까지 내려와서 더위도 식힐겸 배틀트립에 반영되었던 쌍계명차에 갔다. 워너원이 극찬한 홍도라지 아이스크림과 녹차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확실히 홍도라지는 진짜 말하지 않으면 도라지인지 절대 모를 맛이다. 약간 커피맛 같기도 하고 구수한 콩을 갈아넣은 미숫가루 같기도 한데 맛있었다. 홍도라지가 더 달기 때문에 홍도라지를 먹고 녹차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씁쓸한 맛이 나기도 하지만 녹차아이스크림도 깔끔하니 맛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홍도라지는 먹다보면 약간 단맛이 강해 녹차가 더 입에 맞는 것 같다. 쌍계명차는 건물이 깔끔하고 2층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과 다기류를 모아 놓은 박물관도 있어서 한 번 들르기 좋은 곳이다. 근처에 있으면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일 오후라 손님이 없어서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쌍계명차에서 더위를 식히고 화계장터로 걸어내려갔다. 생각보다 문을 닫은 가게도 많고 호객행위도 좀 심했다. 몇 바퀴를 돌다 그 집이 그 집이겠거니 하고 적극적으로 호객을 하셨던 집으로 들어갔다. 시아버지 밥상을 시켰는데 시아버지 밥상은 은어튀김 + 참게장 + 재첩국이 나오는 메뉴인데 임신중이라 날 것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참게장 대신 은어전을 더 많이 달라고 요청드리니 그렇게 변경해주셨다. 재첩국은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시원한 맛에 먹는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내가 별로 재첩국을 안 좋아하거나 술을 안 마셔서 시원하게 속이 풀린다는 느낌이 없었던 건 같다. 은어튀김은 은어 2마리에 빙어튀김이 나오는데 빙어튀김은 뼈도 먹을 수 있어 칼슘섭취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식당에 파리가 너무 많아서 밑반찬은 손도 안대고 남편도 나도 밥은 반그릇도 채 먹지 않았다. 그나마 비싼 은어튀김을 집중적으로 먹고 나왔다. 인당 16천원인데 솔직히 돈이 아까웠다.

  화계장터에서 아까 차를 세워두었던 쌍계명차까지 걸어서 왔다. 쌍계명차 바로 옆에 있는 마트에 들어가 음료수와 보리차 등을 사고 남편의 술과 안주용 웨하스, 맥반석 오징어 구이도 샀다. 수박이 먹고 싶어 구입했는데 크기가 너무 크다. 반쪽만 파는 조각이 있길 바랬는데 사이즈가 다양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제 장본 것들을 챙겨들고 펜션에 왔다. 임신 초기에는 조심해야해서 돌아다니지 못했는데 얼마만에 놀러오는 건지 기분이 좋았다. 황토집들이 즐비하고 작지만 히누끼 욕조도 있고 우리층은 테라스도 있어서 더 멋스럽게 느껴진다. 짐을 대충 풀고 펜션 앞 계곡으로 내려가 발만 담그고 다시 올라왔다. 물도 너무 깨끗하고 사람도 없어서 조용히 즐기기 좋았다. 내일 오후에는 일정을 조금 일찍 마치고 계곡에서 놀 생각이다.

  방에 가서 짐들을 정리하고 수박도 잘라 수박통 안에 넣어두고 남는 수박은 잘라서 우리 먹을 것을 빼고 펜션 관리자분께 드리고 왔다. 욕심부리고 가지고 있어봐야 먹지 않을 것 같아 드렸는데 두고두고 잘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저녁은 먹었기에 일찌감치 테라스에 가서 남편은 술을 마시고 나는 수박을 먹으며 3-4시간 동안 하염없이 얘기를 했다. 딩턴이 얘기도 하고 은퇴 후의 삶이나 내 커리어, 요즘 내 기분들과 서로 감사한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나니 남편과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다 .집에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가 싶지 않은데 나와서 좋은 경치를 보며 물소리도 듣고 어둑해질 때까지 밖에서 얘기하다보니 더 서로에게 감성적이고 진솔해졌다. 내 인생의 3분의 1 이상을 함께 했기에 항상 의지가 되지만 앞으로도 함께 해쳐 나가야 일들이 무수하기에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자며 화이팅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회사 스트레스 등 일상에 지친 남편에게 이번 여행이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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