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10분 화장실에 가기 위해 깬 후 잠을 다시 잘 수가 없었다. 딩턴이는 뱃속에서 꼬물꼬물 발로 차며 난리가 났다. 남편이 등을 돌리고 자길래 백허그를 해줬더니 딩턴이가 계속 아빠를 차는 바람에 남편도 덩달아 깨버렸다. 일어난 김에 쉬는 날임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했다. 아침 메뉴는 남편이 어제부터 먹고 싶다던 청국장으로 정하고 거실에 널어놓은 빨래에 냄새가 배일까봐 빨래부터 정리하고 온 방에 문을 닫고 끓였다. 생각보다 청국장냄새가 심하지 않아 약간 실망스러웠다. 2주 전 남해가기 전날 파를 다듬으며 대파 뿌리 하나를 화분에 심었는데 어느덧 자라서 청국장 끓일 때 송송 썰어 넣었다. 남편이 잘라다주었는데 우리가 직접 키워서 먹으니 수확의 기쁨이 쏠쏠한가보다. 이사가서 베란다가 생기면 좀 더 많이 심어야겠다.

  새벽 6시에 이른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밥을 먹고 사과와 바나나도 챙겨 먹은 뒤 남편이 설거지를 해주었고 나는 인터넷 강의를 봤다. 아침부터 상당히 부지런한 하루였지만 둘다 새벽에 깼기 때문에 다시 잠을 잤다. 남편은 조금만 자고 일어난 듯 한데 나는 2시간이나 잠을 자다가 남편이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며 깨버렸다. 내가 너무 자서 혼자 청소를 하다가 내가 얄미워졌나보다. 문에 걸려있던 옷들을 걷어서 빨래만 개달라고 침대에 올려두고 남편은 다이소에 갔다.

  재봉틀을 하느라 천이랑 부자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보니 그걸 정리할 수납상자와 오래 전부터 내가 부탁해왔던 밥솥 플러그 위치 변경을 위해 양면테이프를 사러갔다. 수납상자는 이전에 봐두었던 슬라이딩상자 중 3종류의 사진을 보내왔는데 어떤게 마음에 드냐고 하길래 무조건 제일 큰 것 2개만 사다달라고 말했다. 남편이 돌아왔는데 슬라이딩상자 2개와 큰 투명상자, 자주 쓰는 부자재를 넣을 수 있는 작은 상자까지 사왔다. 슬라이딩상자에는 각각 딩턴이 물건 완성품과 부자재를 넣어두고 큰 투명상자에는 원단을 넣었는데 투명하니 어떤 원단이 있는지 보여서 좋다. 그런데 동대문에서 산 원단은 하나도 안들어갔다. 수업할 때 외에는 크게 원단을 사지 않았는데 수업하다 남은 쪼가리 원단들이 넘쳐난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만들어야겠다.

  남편은 구입해둔 양면테이프로 밥솥 플러그를 아일랜드 식탁 옆에 내 손이 닿는 위치에 고정해주었다. 매일 만삭의 몸으로 쪼그리며 허리를 숙이면서 플러그 전원을 눌렀는데 남편 덕분에 동선이 한결 나아졌다.

  점심은 아침에 먹은 청국장찌개를 데워서 먹고 어제 사온 콘칲을 먹으며 이전부터 보려다가 못본 마이키이야기3를 보았다. 오래된 영화인데 딩턴이를 가지고 남편과 1,2편도 재밌게 보았는데 3편은 아이가 제법 컸는데도 정신 없는 엄마, 아빠의 육아일상이 펼쳐진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콘칲을 다 먹고나니 입이 더 심심해져서 새로 생긴 홍만두에서 김치만두를 사왔다. 여기서 그쳤어야했는데 편의점에 가서 요즘 인기라는 인기가요 샌드위치를 표방한 아이돌 샌드위치와 과자들을 추가로 더 사왔다. 아이돌 샌드위치에는 딸기잼과 게맛살이 씹혀 맛있었는데 남편 입에는 특별하지 않고 그냥 그렇다고 하길래 마지막 한입은 내가 먹었다. 호불호가 갈리기 쉽지 않은 조합인데 의외였다.

   역시 영화는 뭘 먹으면서 봐야 제맛인 것 같다. 한바탕 먹방을 펼치며 영화를 이어 감상했다. 남편은 3편이 제일 재밌다는데 나는 마이키가 뱃속에서 이야기하는 1탄이 제일 재밌었던 것 같다. 마이키이야기1 덕분에 우리 딩턴이가 뱃속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상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배가 불러서 남편과 낮잠을 더 잤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원래 간식을 많이 먹어 속도 더부룩하고 저녁은 안 먹으려고 했는데 속이 느끼하니 매콤한게 땡겨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메뉴는 2일 전에 일미닭갈비를 먹었지만 오늘은 터미널 근처에 새로 생긴 일미닭갈비에 가보자며 닭갈비로 정했다. 엊그제 갔던 풍년로 일미닭갈비보다 2천원씩 비싸고 특히나 파전은 6천원이나 더 비쌌다. 파전은 양쪽가게 모두 안 먹어봤으니 비교불가이지만 닭갈비 양념맛은 풍년로쪽이 좀 더 강하고 자극적이다. 대신 터미널쪽 닭갈비는 콩나물에 버섯까지 더 다양한 야채가 들어가고 남편에 의하면 막걸리가 더 진하고 맛있다고 한다. 인테리어는 아무래도 새로 생긴쪽이 더 낫다. 어느쪽 모두 닭갈비는 진리인 것 같다. 너무 정신없이 먹느라 닭갈비 사진 찍는 것도 잊고 먹었다. 볶음밥까지 볶아먹으니 만족스러운 한끼였다.

  닭갈비를 먹고 남편이 2일 전에 찍었던 발산공원 장미터널 야경사진이 흔들려서 다시 찍고 싶다고 해서 남편과 산책 겸 다녀왔다. 장미터널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사진 스튜디오 건물에 벽화가 예뻐서 남편이 사진을 찍었는데 멋스럽게 잘 나온 것 같다. 장미터널 사진보다 벽화사진이 정말 예쁜 것 같다. 터미널까지 온 김에 남편과 서점에 들러 나는 재봉틀 책을 보고 남편은 사진책을 둘러보고 2층 유니클로에 가서 국민바디슈트라는 바디슈트도 구경했다. 2개에 9,900원이었나?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바디슈트제작이 망설여진다. 내가 만들어도 기성품은 못따라갈텐데 좋은 천으로 승부해야하나? 그러면 원단을 추가 구입해야할 것 같은데 집에 원단이 너무 많다. 이래저래 고민이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막걸리를 마셔서인지 일찍 잠들었고 낮잠을 2번이나 나눠서 잤던 나는 잠이 오지 않아서 재봉틀 책을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딩턴이 몽키바지의 뒷판과 엉덩이부분을 연결했다. 지난번에 뒷판만 2번 재단하는 바람에 앞판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앞판이 있었다면 아마도 다 만들고 자지 않았을까 싶다. 내일은 앞판도 재단해서 열심히 만들어봐야겠다. 밤에 재봉틀에 집중하다보면 특히나 더 잠이 오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잠이 안오는 날마다 밤에 재봉틀을 해서인걸까? 아무튼 원단도 줄일겸 당분간은 열심히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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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고용센터가 있는 사창동에 갔다가 서브웨이 충북대점이 새로 생긴걸 발견했다. 작년 여름에도 블로그 리뷰가 있는 걸로 보아 완전 최근은 아니지만 아무튼 서브웨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간 왜 청대점밖에 없는지 청대까지는 그래도 거리가 있어 거의 먹질 못했는데 충대에 생겨서 너무 좋다. 아침부터 서브웨이 먹으려 했는데 맥도날드에 가면 아침에는 맥모닝만 팔듯 별도 아침메뉴가 있는듯 했다. 인터넷에 보니 11시부터는 일반 샌드위치도 팔길래 11시에 충대에 가기로 하고 남편은 운동을 갔다.

  남편이 딱 11시에 돌아오고 충대에 가기로 했는데 남편은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거기서 먹길 원하고 나는 포장해서 집에서 영화를 보고 먹길 원했다. 남편이 하는 "거기서 먹어야 더 맛있어 " 이 말을 한 마디로 무너뜨렸다. "충대 간김에 일미 닭갈비 가서 점심 먹고 서브웨이는 싸올까?" 남편은 바로 콜을 외친다.

  그렇게 충대에 가서 일미 닭갈비를 먹었다. 주말이라 혹시 점심 장사 안하면 어쩌지? 했는데 다행히 열려있다. 닭갈비 소자에 볶음밥, 막걸리를 시켰다. 임산부인 나는 막걸리를 먹을 수 없고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그나마 막걸리는 좋아라했었는데 슬펐다. 남편은 시원한 막걸리를 첫 잔 마시자 마자 캬~ 소리를 낸다. 얄밉다. 잔을 뺏어 냄새만 맡았다. 아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스타일의 막걸리네. 빨리 아기를 낳고 수유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냄새만 맡고 있는 내가 짠했는지 "사실 첫 잔을 마시는데 막걸리가 너무 시원하고 맛있는데 니가 먹고 싶을까봐 맛있는거 숨기고 소리도 안냈어" 라고 말한다. "오빠 캬~ 했거든, 그래서 내가 냄새 맡은거야." 남편이 머쓱해한다.

  오랜만에 먹는 닭갈비가 너무 맛있어서 밥까지 싹 비우고 나오니 공원 앞 화분에 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미세먼지가 있지만 그래도 맑은 하늘에 붉은 꽃이 제법 강렬한 색감을 뽐낸다.

  더운 날씨에 달달한게 먹고 싶어 가성비 갑이라는 화이트스노우 초코시리얼빙수를 먹고 싶었는데 남편은 막걸리도 조금 마셨고 배도 불러서 그런지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눈치다. 서브웨이에 가자고 한다. 그냥 집에 갔다 이따가 다시 나오자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빙수 못 사준게 걸렸는지 집 근처 설빙에서 사준다고 해서 그냥 아이스크림 사달라고하고 마트에서 쭈쭈바를 사왔다. 갑자기 뽕따가 눈에 들어오길래 사왔는데 정말 오랜만에 먹어 그런지 특유의 시원함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 어렸을 때 재밌게 본 마이키 이야기를 봤다. 사실 어제도 보스 베이비를 봤는데 일기에 깜빡하고 빼먹었다. 딩턴이를 가지다보니 애기 나오는 영화가 보고 싶었다. 마이키 이야기는 유부남과 사랑의 빠진 몰리가 마이키를 임신하게 되는데 유부남은 임신한 몰리를 두고 또 다시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다. 몰리는 그 상황을 목격하던 중 갑자기 진통을 겪게 되고 급하게 제임스(존 트라볼타)가 운전하는 택시에 타 병원에 가게 된다. 분만실로 이동 중 제임스는 아이 아빠로 오해 받아 함께 출산을 돕는다. 이후 마이키의 베이비시터를 겸하며 마이키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사고를 겪을 뻔 한 마이키를 구해주게 된다. 마이키는 제임스를 아빠라고 부르고 마이키에게 좋은 아빠를 구해주고 싶었던 몰리는 제임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해피엔딩 스토리이다. 재미도 재미지만 특히 마이키 이야기가 다시 보고 싶었던 이유는 아기의 생각을 볼 수 있었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뱃속에 있는 태아 상태일 때 "엄마, 빨리 사과쥬스 좀 내려주세요.", 출산 장면에서도 "저 빛은 뭐지? 아 밀지마 밀지마", 태어나서도 "뱃속이 아닌데서 어떻게 살라는거야 너무 추워" 하는 모습들이 마치 딩턴이를 보는 것 같았다. 딩턴이도 뱃속에서 "엄마 밥 좀 주세요." 그러고 있을 상상을 하니 웃음이 나온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남편이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와서 내 바람대로 영화를 보며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었다. BLT 샌드위치에 꿀 조합이라는 스위트칠리를 소스로 뿌렸는데 진짜 꿀 조합대로 먹어야하는 이유를 찾았다. 진짜 맛있어서 남편보다 빨리 먹을 정도였다.

  저녁으로는 남편이 얼큰하고 칼칼한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해 청양고추를 2개 넣은 순두부찌개를 끓여 먹었다. 고추를 많이 넣어 맵거나 속이 쓰릴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입에 맞았다. 뒷 정리를 하고 집에 남아있던 참외를 다 먹었다.

  인터넷 강의를 보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어렸을 때 같이 먹던 음식을 먹고 거리를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 같이 캠퍼스를 걷기로 약속했다. 나중에 딩턴이가 태어나 좀 크면 같이 데리고 나와 엄마, 아빠의 추억을 이야기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줘야지. 남편과 일미 닭갈비에서 밥을 먹으며 우리 딩턴이도 우리처럼 대학생 때 배우자감을 만나 추억을 많이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이제 인생의 3분의 1을 같이 한 우리는 공유할 추억이 많아 더 행복한 커플인 것 같다. 인생의 21년을 빼고 옆에 있어준 남편이 고맙다. 앞으로 한 60년은 더 내 옆에서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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