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에 가는 날이기 때문에 주말이지만 평소와 비슷하게 일어나서 짐부터 챙겼다. 남편은 결혼식에서 밥을 먹고 나도 지인을 만나 식사할 예정이기에 아침은 간단하게 통밀빵 1개와 앱솔맘 오렌지쥬스로 대체했다. 약속장소가 남편은 삼성역, 나는 서울역이기 때문에 남편은 결혼식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버스를 타고 나는 오송역에서 KTX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갔다. 버스터미널이 훨씬 가깝지만 지하철 이동과 환승이 힘들 것 같아 기차를 탔는데 결과적으로 편하게 갈 수 있어서 좋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출장을 자주 다녀서 오송역에도 자주 갔고 KTX도 자주 탔는데 퇴사 후 처음 오송역에 가니 너무 반가웠다. 원래 본정 가판대가 있던 곳은 못 보던 베이커리가 생겼다. 진짜 오랜만에 다녀온 것이 실감이 났다. 혹시나 예약한 기차를 놓칠까 일찍 나섰더니 30분이나 기다렸다. 원래 책을 가져오려고 했었는데 짐이 많아 뺏더니 딱히 할 일이 없어 오늘 약속장소인 더 베이커스테이블 서울스퀘어점에 대한 블로그 정보를 뒤적거렸다. 스프가 맛있다니 스프는 필히 시켜야겠고 음식이 짜다는 평이 많아서 살짝 걱정도 되었다.

  30분 후 기차가 왔고 서울행 열차를 탔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고 기차도 꽉 찼다. 출장갈 때 출근 시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물론 월요일 출근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붐비겠지만 활기 없이 대부분 사람들이 수면을 택하는 출근시간과는 달리 북적북적 요란했다. 서울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제 못 쓴 블로그를 썼다. 블로그를 거의 다 써갈 때 쯤 드디어 서울 도착, 비는 다행히 오지 않았고 약속장소인 서울스퀘어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최과장님도 도착하셔서 바로 식당으로 들어갔다. 미리 예약을 해 두어서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오늘 만나는 최과장님은 같은팀에서 2년 정도 근무 했는데 우리 공장에 여자 관리자가 없었기도 하고 그 전에 워크샵에 갔다가 숙소를 같이 쓴 적도 있어서 금방 친해졌다. 언니처럼 조언도 잘해주시고 가끔 퇴근 후 맥주나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종종 떨었던 기억도 있다. 계열사 이동 후 미국에서 2년간 근무하셔서 카톡으로만 연락드리다가  올해 퇴사 전에 한번 뵙고 오늘 퇴사 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다음주에도 또 두달 간 미국에 가신다는데 바쁜 와중에도 우리 딩턴이 선물은 챙겨주셨다. 너무 예쁜 베넷저고리와 모자세트이다. 이전에 강아지띠인 딩턴이를 위해 만들어주려던 디자인과 비슷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

  더베이커스테이블은 양이 좀 많다고 해서 스프는 1개만 시키고 모짜렐라파니니와 치킨 샐러드를 시켰다. 생각보다 짜지 않고 맛이 좋았다. 역시나 스프가 제일 맛있었다. 나는 저녁에 엄청난 폭식이 예상되기에 음료는 물로 대체했다. 스프에 떠 있는 마늘빵 덕분에 계란후라이처럼 느껴졌다. 과장님도 다음 약속이 있고 나도 2시 30분에는 연극을 봐야하기 때문에 1시간 30분 정도 밖에 시간이 없었지만 폭풍수다를 떨었다. 최근 근황들과 미국 출장 전 타 부서간 협의가 안 되어 눈치보셨던 사연, 예전 추억들 등등 오랜만에 만나니 시간 가는줄 몰랐다. 그 사이에 또 비는 한바탕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 청계천에 가려고 했는데 과장님이 비 오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도 조언해주셨다.

  또 대화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지금 내 모습이 편안해보이고 그냥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 생활에서 벗어나 지금 생활에 잘 적응하고 나한테 좋은 것, 남편한테 좋은 것, 아기한테 좋은 것들을 선택하고 가정의 틀안에서 영리하게 잘 운영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잘하고 있는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얼마전에도 만삭 임산부가 덥고 습한 날씨에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우셨는데 경제적으로도 당장 돈을 벌어야하는 상황도 아니고 임신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퇴사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부럽고 너무 잘하고 있어서 기특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잘 하고 있는거라고 말씀해주셔서 뭔가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았다. 연차까지 포함해서 이제 3달 가까이 집에 있는데 남편도 나도 건강한 음식을 먹고 문화생활도 하고 치이는 삶에서는 많이 벗어났다. 삶의 질이 이전과 비교도 못 할 정도로 좋아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3분의 1토막 난 희망연봉과 이력서 쓸 때마다 느껴지는 자존감 상실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잘 하고 있다는 한 마디에 많은 격려를 얻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과장님과 헤어지고 나는 남편과 만나기 위해 혜화역으로 출발했다. 남편에게 어디냐고 물으니 뚝섬이라고 해서 혜화역으로 바로 가지 않고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서 내려 남편을 기다렸다가 같이 갔다. 혜화역에서 내려 수상한 흥신소 전용관을 찾았다. 초행길이라 헤매지는 않았지만 여기가 맞나? 계속 불안한 마음에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날씨가 매우 후덥지근 했다.

  수상한 흥신소는 예전에 청주에서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남친이었던 남편이 싫다고 해서 보지 않았다. 남편은 연극과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콘서트를 즐기는 편이다. 뮤지컬과 연극은 사귀는 9년간 각각 1편 밖에 보지 못할만큼 선호하지 않았지만 딩턴이가 생긴 이후로는 문화생활을 많이하려고 노력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연극도 남편이 예약을 먼저한다고 해서 놀랬다. 원래 보고 싶었던 연극이기에 너무 재밌게 봤다. 연극 시작 전부터 빵빵 터트려주었던 멀티걸 덕분에 정말 많이 웃었다. 쭉 재밌기만 한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슬픈 장면도 많이 있었다. 영혼을 볼 수 있는 남자주인공에게 각 영혼들이 나타나서 부탁을 들어달라고 의뢰를 하는 내용인데 각 죽음에는 각각의 사연이 있기에 더 슬펐었다. 극 중 대사중에  '좋아한다면 내가 뭘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방이 뭘 원하고 있는지 생각하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남편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강요하지는 않는지 나중에 딩턴이에게도 유익하다는 이유로 딩턴이의 욕구들은 무시한 채 강요하는 엄마가 되지는 않을지 생각을 하게 하는 대사였다.

  연극을 보니 4시 30분이어서 밥을 먹기로 했는데 남편이 서울 출신 회사사람 3명에게 추천 받은 한성대 목살 맛집 돈가래에 갔다. 오로지 메뉴는 목살 1개 뿐이며 마침 혜화역에서도 1정거장이라 바로 가기로 했다. 4시 50분에 도착했는데 오픈 시간이 5시라 10분이 남아 근처 이디아에서 캐모바일레드티를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 식사시간이 되면 줄을 서야하는 맛집이라기에 얼른 마시고 5시 5분이 되자마자 바로 입성했다. 다행히 손님은 아직 2팀이다.

  고기는 사장님께서 직접 초벌을 해주셨고 간에 딱 맞게 소금도 쳐주셨다. 밥을 안먹을 생각이었으나 비지장이 맛있다고 해 밥도 1공기 시켜서 나눠먹었다. 보통은 상추에 쌈을 싸서 고기를 먹는 쌈파인 나지만 기본쌈도 없는 상차림에도 불구하고 느끼함 없이 잘 먹고왔다. 근래 먹었던 고기중에서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 1인분 당 15,000원이나 하는 비싼 고기이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고 1991년 이후로 30년 가까이 가게를 운영하신 내공이 느껴졌다.

  밥을 먹고 나오니 비가 왔다. 숙소가 있는 안국역까지는 가까운 거리지만 지하철을 타면 2번 환승해야하기 때문에 버스를 타기로 했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 앉아갈 수 있었다. 안국역에서 내리니 비가 폭탄처럼 쏟아진다. 인사동 거리를 한적하게 구경하고 싶었는데 일단 숙소부터 급하게 찾아갔다. 진짜 숙소는 버스정류장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는데 멀게만 느껴졌다.

  비 폭탄을 뚫고 K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더블로 예약했는데 싱글 2개가 붙어있네 ^^; 사진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래도 숙소는 깨끗했고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꿉꿉한 냄새도 없었다. 다음 날 조식도 가능하고 5만원대로 저렴하게 구한지라 에어컨도 TV도 있고 화장실도 깨끗해서 나름 만족했다. 게스트하우스라 냉장고도 없을 줄 알았는데 미니 냉장고도 구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침대외에는 거의 공간이 없고 침대도 너무 딱딱했다. 자는데 허리가 너무 아팠었다. 장기투숙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3층에 조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과 세탁기가 있었고 옥상에는 테라스도 있었지만 비가 와서 의자가 다 젖어서 이용할 수가 없었다. 적당히 선선하고 날씨 좋은 날에는 테라스도 매력적인 공간이 될 것 같았다. 좋은 날씨에 테라스에서 치맥하면 너무 맛있을 것 같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피곤해서 씻고 1시간 정도 잠을 잤다. 일어나니 7시였는데 밖에는 비가 그쳐서 광장시장에 가기로 했다. 이미 목살을 먹어 배가 불렀지만 서울 오기전부터 남편이 꼭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다녀왔다. 광장시장은 빈대떡, 마약김밥, 육회가 유명한 것 같았지만 육회는 날거라 패스하고 빈대떡과 마약김밥만 먹었다. 남편은 떡볶이와 순대도 먹고 싶은 눈치였지만 배가 너무 불러서 먹지 말자고 했다.

  우선 빈대떡은 광장시장 유명식당인 순희네 빈대떡에서 먹었다.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줄을 서서 먹었는데 맛있긴했지만 느끼하고 배가 불러 반도 못 먹고 나왔다. 남편은 차도 없고 분위기도 좋은지 신이 나서 막걸리까지 마셨다. 더는 먹기 싫었는데 여기까지왔으니 마약김밥 하나는 맛만 보재서 아무 가판대나가서 먹었다. 불친절하고 맛도 없었다. 와사비맛 밖에 안나는 마약김밥, 물론 내가 배가 불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남편에 소원대로 광장시장에까지 부지런히 다녀왔지만 둘 다 한 번쯤 가보고 일부러는 안와도 되는 곳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도 추억이겠지만 대구 서문시장 맛집탐방이 훨씬 즐거웠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사거나 치킨을 시켜 먹자는 남편에게 건강에도 좋지 않고 지금 배부르고 반도 못먹고 버릴거다. 돈 아깝다고 설득해서 오늘은 그냥 잤다. 남편은 테라스에서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듯 했으나 습한 날씨와 젖은 의자가 맘에 들지 않아 숙소에서 에어컨을 쐬며 로마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남편이 먼저 잠이 들길래 나도 잠이 들었다. 서울에 가더라도 외국인처럼 관광명소를 돌아다닌 것은 처음이기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중에 딩턴이가 조금 자라면 한옥에서 머무르며 체험도 할 수 있게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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