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오늘 아침은 짜파게티야! 일어나서 먹을 준비해." 라고 하는 소리에 딩턴이가 발로 차고 반응을 한다. 신기해서 다시 짜파게티, 짜파게티하니 그럴 때마다 쿵쿵쿵!! 짬뽕, 탕수육하니 또다시 쿵쿵쿵!! 딩턴이 오늘은 중화요리니? "아빠 오늘 할머니한테 가면 짜장면이랑 탕수육 시켜달라고 해주세요. " 라고 하니 할머니가 먹을 것 많이 해둬서 안돼라고 말하는 남편이다. 어차피 지금 당장 안 먹으면 먹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니 상관없다.

  일어나서 남편이 끓여준 짜파게티를 먹고 어제 엄마가 준 복숭아를 깎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순간 어제 잠깐 남편이 친구와 맥주를 마시고 왔을 때 친구가 배를 줬냐며 물었다. 복숭배라고 별명을 지어줬다. 태어나서 본 복숭아 중 가장 달고 크다. 남편의 손이 일반인보다 큰 편인데도 남편 주먹보다 컸다. 한개만 잘라도 접시가 가득차고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더욱 맛있었다. 



  밥을 먹고 남편이 설거지와 뒷정리를 해주고 나는 씻었는데 헤어드라이기 열기에 숨이 갑자기 차서 누워서 쉬었다. 아침먹고 출발할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시간이 점점 지체되어 불안해졌다. 어머님께서 전화를 하셨는데 남편이 내가 몸이 안좋아서 누워있다고 말씀드리니 점심 먹고 천천히 출발하라고 하셨다. 통화를 마치고 제과점에 들러 남편친구네 추석선물을 고르다가 마땅한게 없어 간식빵만 몇개 샀다. 바로 옆 마트에 들러 멜론 선물세트를 산 후 배달을 마치고 시댁으로 출발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했고 어머님이 차려주신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청국장찌개와 두부찌개, 각종 반찬들로 상다리가 휘어졌다. 점심을 먹고 임산부라 설거지조차 시키시지 않으셨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기 전 큰집에 인사드리고 오라고 하셔서 남편과 큰아버지댁으로 갔다. 큰집에 가니 한참 송편을 만들고 계셨다. 우리 시댁은 차례를 안지내서 명절 노동이 없고 매년 추석에는 펜션으로 여행을 가는데 이번에는 내가 만삭이라 여행은 가지 않았다. 큰집은 차례를 지내지 않음에도 송편과 명절음식들을 마련하기 때문에 형님들이 정신없이 바빴다. 명절 증후군 없는 시댁에 시집을 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집에서 과일과 한과를 내주셔서 간식을 챙겨먹고 남편은 33도짜리 중국술을 큰아버님과 사촌형과 나눠마셨다. 사귈 때부터 남편은 명절날이면 항상내내 연락이 안되다가 취한 후 집에 가는 밤늦게 전화를 했기 때문에 점심부터 술을 먹는 남편의 모습에 살짝 긴장도 되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술한병만 뜯고 우선은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큰아주버님이 양갈비를 10kg이나 사오셔서 숯불구이를 할 계획이라 긴장은 늦출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님께서 부추를 다듬고 계셔서 부추를 다듬는 것을 내가 하고 남편은 더덕무침을 하기 위해 더덕을 다듬고 절구공이로 찧는 작업을 하였다. 시댁은 음식을 만들 때도 남자들도 함께 참여해서 만들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 어머님은 식구들이 먹을 전을 조금 부치셨는데 원래 명절마다 내가 했지만 이번에는 임산부라 시키시지 않으셨다. 임산부 특권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 같다. 

  가게에서 아버님이 돌아오셔서 남편과 아버님은 6시에 큰집에 가고 어머님과 나는 남아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따로 하신다는 것을 남은 밥과 반찬으로만 먹자고 말씀드렸다. 점심에 먹은 밥도 남아 있어서 계속 새로 밥을 하면 남은 밥이 부담될 것 같았다. 역시 주부의 마음은 주부가 알아줘야하지 않나 어머님도 반기시는 눈치셨다. 남은 밥이 꽤 있어서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어머님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이따가 치킨을 시켜먹자고 하셨는데 배가 불러서 아버님과 남편이 오면 그때 먹자고 말씀드렸다. 

  8시 30분쯤에 아버님이 돌아오셨는데 취하신 눈치셨고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님께서 계속 남편에게 전화해 빨리 들어오라고 채근하시는 소리가 들린다. 니가 안와서 며느리 잠도 못잔다며 타박하시는데 남편은 취했는지 "지금 들어가요."라고 대답만 하고 오지 않았다. 9시 20분쯤 남편이 출발한다는 전화를 했는데 취했는지 어디냐는 물음에 큰집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에 있는 건물을 얘기하길래 어머님께서 마중을 나가셨다. 그런데 취하신 아버님도 덩달아 나간다고 하셔서 아버님께 핸드폰을 쥐어드리고 "남편이 도착하면 전화드릴께요." 하고 얼른 어머님께 전화해 아버님도 나가셨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5분도 안되서 남편과 아버님은 어머님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고 상황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남편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카페 영수증을 들고 왔길래 카페에 갔냐는 물음에 카페에 간 적이 없다고 말을 했다. 확실히 취한 것 같다. 손발만 겨우 씻은 남편은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 옆에 누워 작년 추석처럼 토하면 안될텐데 하는 걱정뿐이었다. 어머님은 자다가 남편이 배를 발로 찰까봐 노심초사하셨다. 다행히 남편이 생각보다 얌전하게 잠들어서 나도 10시 30분쯤에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내년 명절에는 딩턴이도 있으니 절대 술을 많이 못먹게 해야겠다. 늘상 큰집에 가면 긴장의 연속인 것 같다. 우리 딩턴이도 아빠 닮아서 술을 너무 좋아할까봐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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