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펑펑 울며 잠에서 깨어났다. 10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할머니한테 나는 나쁜 손녀 딸이였다. 밥도 잘 안먹고 심부름도 안하고 집안일도 전혀 안 도와줬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본 날도 나는 할머니한테 짜증만 냈었다. 편찮으시다고해서 죽을 사왔는데 못드셨다. 그게 마음에 아파서 왜 생각해서 사왔는데 먹지 않냐며 화만 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지금도 너무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 할머니는 나한테 미안하고 고마운 존재다.

  꿈 속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아 아들 (우리 아빠)을 빨리 불러야겠어 아니야 이미 돌아가신 것 같아 라는 소리를 듣고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나 : 할머니 내가 미안해 ㅜㅜ
할머니 : (갑자기 정신이 들며) 뭐가 미안하노?
나 : 내가 못되게 군거, 말 안들은 거 미안해
할머니 : 미안한 것도 쎄배렸다.
나 : 할머니 나 잘 키워준거 너무 고마워
할머니 : 그래 니도 니 자슥 잘 키워라

  원래 할머니가 꿈 속에 나와도 말씀은 절대 안하셨는데 평소 쓰던 경상도 사투리까지 똑같았다. 아마 우리 딩턴이 축하해주고 싶으셔서 할머니가 꿈에 나왔나보다. 내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 남편도 놀라 잠을 깨버렸다. 한참을 울고 또 울다가 남편의 위로로 좀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남편이 계란밥을 해줬다. 아침을 많이 먹진 않지만 남편이 해준 계란밥은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새벽에 많이 울어서인지 임신 영향인지 너무 어지러워서 좀 더 잤다. 자는 동안 남편은 마트에 가서 형님네 조카 줄 어린이날 선물과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사왔다. 어린이날 선물은 여아용 레고로 골랐다. 이제 6살인 조카를 위해 나는 숨은그림찾기, 한글공부, 색칠공부책을 사주고 싶었는데 남편은 별로였는지 바로 장난감 코너로 가서 또래 여자아이들이 가장 많이 줄 서 있는레고를 골랐다고 한다.

  오늘 어머님, 아버님, 형님네 식구들과 식사를 할 예정이기에 남편과 집 청소를 싹 했다. 평소 간이 청소만 하다가 걸레질까지 완벽히 끝내니 개운한 느낌이다. 화장실도 청소하고 화장실 발판도 새로 바꿨는데 깔끔하니 좋다. 특히 옆에 있는 그레이색 매직캔 쓰레기통과 색상이 제법 잘 어울린다.

  청소를 마친후 쉬다가 어머님, 아버님 도착하셔서 저녁먹으러 갔다. 팔팔 전복문어탕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이 있어 그런지 손님이 꽉 찼다. 미리 예약을 해 방을 잡아둬서 다행이다. 메뉴는 문어전복탕과 낙지볶음을 먹었다. 낙지볶음은 왜인지 끌리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다. 어머님은 계속 문어와 전복을 내 접시에 주시며 남편한테 좀 챙기라고 타박을 하셨다. 우리 집은 고부 갈등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자식처럼 대해주시는 어머님 덕분이다. 형님도 록시땅 바디 크림을 선물로 주셨다. 임신을 처음 알았을 때 랍스타도 사주시고 임산부용 바디클렌저와 샴푸도 사주시고 비오템 튼살크림까지도 사주셨는데 오늘 또 선물을 주셨다. 늘 받기만 해서 죄송한 마음이다.

  형님은 잘 챙겨주는 언니를 갖고 싶었는데 언니가 없어서 여자 후배들이나 아는 동생들한테 정말 잘한다고 하셨다. 결혼할때도 내가 여동생처럼 진짜 잘 챙겨줄꺼야 라고 말씀하셨는데 처음 임신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날 위해 세심하게 너무 잘 챙겨주신다. 남편도 잘해주는 남편이지만 명절때 차례도 없고 제사도 없어 음식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음식이나 설거지를 할 때 남자도 같이 하는 것도 그렇고 어머님, 아버님, 형님까지 불편하지 않게 너무나도 잘 챙겨주셔서 결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집에 와서 과일과 차를 마셨다. 참외를 깎으려고 서있는데 임산부는 오래 서 있는거 아니라며 아버님이 참외를 깎으셨고 차 준비도 남편보고 하라고 빨리 일어나라고 성화시다. 어머님은 집에 오실 때 늘 반찬을 챙겨주시는데 육계장, 나물, 멸치, 브라질 너트, 파김치, 오렌지 등등 엄청나게 가져오셨다. 당분간 반찬 걱정은 없을 것 같아 든든히다.

  갑자기 남편 전화로 남편 친구가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나갔는데 단양에서 만두를 사왔다고 한다. 예전에 어머님 아버님께서 생활의 달인에 단양 만두집이 나왔다며 맛있어 보이는데 택배 주문 가능할지 나중에 단양에 놀러가면 먹어야겠다고 하신 것이 기억에 나서 같이 드시자며 권했는데 다들 배가 불러 먹을 수는 없다고 하신다. 괜찮다고 하시는 것을 어머님 아버님 드실 거랑 형님네 드실거 따로 포장을 해서 싸드렸다. 이렇게라도 드시고 싶으셨던 것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어머님 아버님 가시는 길에 용돈과 카네이션을 챙겨드리고 배웅을 해드렸다. 형님과 어머님께 도착시간에 맞춰 전화도 드렸다. 오늘도 따뜻한 가족모임이었다. 나중에 우리 딩턴이가 태어나면 이런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 사랑스런 아이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일차] 2018.05.07  (2) 2018.05.08
[13일차] 2018.05.06  (2) 2018.05.07
[11일차] 2018.05.04  (2) 2018.05.05
[10일차] 2018.05.03  (0) 2018.05.04
[9일차] 2018.05.02  (2) 2018.05.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