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다. 남편과 아침 식사를 하는데 평소와 달리 유건이는 찡찡거림 없이 우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그냥 지켜봐주었다. 덕분에 여유로운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느긋하게 기다려준 유건이가 너무 기특했다.

  의젓한 유건이의 모습을 보니 문득 아들내미가 어느새 부쩍 큰 것 같다. 아직 45일차지만 4시간의 수유텀을 꼬박 지켜주고 있고 새벽에도 수유시간 외에는 거의 깨는 일이 없다. 또 표정이 생기고 옹알이도 시작했다. 예전에는 울 때 이외에는 소리가 없었는데 찡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유건이에게 가보면 옹알이와 함께 웃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시력도 제법 자리를 잡았는지 관심 없었던 모빌을 보며 좋아하기도 한다. 이제 신생아 시절의 부숴질 것 같은 여리여리함은 사라졌다. 좀 더 머물러 있어주길 바라면서도 조금 커서 같이 여행도 다니고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출산하고 처음으로 집에서 영화를 봤다. 남편이 미디어팩 가입자라 매달 TV포인트가 생기는데 무슨 영화를 볼까하다가 국가부도의 날을 봤다. 보는 내내 화가 나고 마음이 무겁다. IMF 사태 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서민들의 삶이 붕괴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국민의 혼란을 막는다는 핑계로 당연히 알아야 할 국가부도 소식을 기득권에만 알리는 모습이 씁쓸하다. 사실 항상 경제가 어렵다 소리만 들어 경제 호황기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신기하다. 만약 나도 그 시절에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이였다면 내 삶도 붕괴되었지도 모르겠다. 극중 김혜수씨가 연기한 한시현 역의 카리스마가 인상 깊었다. 나도 한시현 같은 멋진 커리어우먼이자 금융인이 되고 싶었었는데 영화를 보며 한시현의 능력과 리더십, 그리고 용기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세력 앞에서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했지만 그것 역시 현실을 반영한 것 같았다.

  국가 부도의 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항상 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이라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인지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익숙하지 않지만 이런 사태에 두 번 당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좀 더 세상의 흐름에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지금과는 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육아를 하는 것도 힘이 들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