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35분에 일어났는데 남편이 씻고 준비를 다 마쳤다. 오늘 회식 때문에 회사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나간다고 했다. 일부러 어제 밥도 예약을 해놨는데 못먹고 가니 서운했다. 사과라도 깎아주려고 했는데 남편이 밥을 조금 먹고 가겠다고 해서 얼른 반찬을 꺼내 챙겨먹었다. 시간이 없어 진짜 60g씩만 초소량식사를 했다. 다행히 남편은 늦지 않게 오송역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오송역에서 BRT를 타고 세종시에서 회사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가야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이사를 가면 오송역 가는 정류장이 더 멀어져서 이 방법은 사용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남편을 배웅하고 어제 에코백을 만드느라 3시간도 못자서 바로 다시 잠을 잤다. 9시에 아빠한테 전화가 와서 깼다가 10시까지 다시 잠을 잤다. 양치와 세수만하고 바로 필라테스를 하러갔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숲길이 아닌 상가쪽으로 걸어갔는데 먹거리가 많이 있었다. 찹쌀도너츠, 꽈배기, 찐빵, 빵 등등 밀가루들이 엄청 땡겼지만 참았다. 병원 문화센터 가는 길과 집에 돌아갈 때 붕어빵 가게도 있지만 며칠 째 참고 있다. 이번주 병원에 가면 딩턴이가 통통 아가일까봐 걱정이 되서 식단조절 중이다.

  오늘 필라테스는 비교적 쉬운 편이었다. 앉아서 허리를 피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고 강사선생님도 너무 불편해보인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외 동작들은 무리없이 소화를 했다. 임신하기 전에도 유연성이 없어 잘 되지 않았지만 확실히 배가 나오니 앉아서 구부리는 동작은 쥐약이었다. 그래도 운동을 가기 전에는 갈까말까 망설였는데 운동을 하고 나니 개운해졌다.

  운동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비가 조금씩 떨어졌다.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예약된 차인지 서지 않아서 그냥 버스를 20분 기다려서 타고왔다. 다행히 버스에서 내린 이후로는 비가 오지 않았다. 마트에 들러 소고기와 바나나 두부를 사서 집으로 왔다. 오늘 아빠가 집에 올 예정인데 저녁을 차려줄 계획이다.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아빠를 위해 밥을 해본 적이 없고 남편을 위해 요리할 때면 가끔 결혼하기 전에도 집에서 아빠한테 밥도 해주고 할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좀 힘들더라도 직접 밥을 하기로 했다.

  우선은 집으로 돌아와 점심으로 바나나와 어제 남은 떡을 먹고 몸이 힘들어서 좀 쉬었다. 운동을 해서 알이 배긴건지 임신 후기라 몸이 무거워진건지 하복부가 너무 아팠다. 잠은 자지 않았지만 휴식을 위해 2시간 정도 멍하니 누워있었다. 4시가 되어서 밥을 하고 쇠고기무국과 된장찌개를 끓였다. 청양고추를 넣은 된장찌개는 아빠가 거의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데 또 좋아하는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꽈리고추무침이 생각났다. 마트에 가서 꽈리고추와 다진마늘을 사서 꽈리고추무침까지 완성을 했다. 3가지 메뉴를 만드는데 약 1시간이 걸렸다.

  5시가 되어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는다. 오늘 7시 오송에서 한비야 작가님의 특강이 있어 평소 한비야 책을 즐겨 읽는 아빠와 같이 가기 위해 오늘 우리집에 들리는 것인데 밥까지 먹으려면 늦어도 5시 30분에는 우리집에 도착해야한다. 그런데 전화조차 연결이 되지 않았다. 10분뒤 겨우 연락이 되었는데 청주에 있다며 5시 30분쯤 출발한다고 한다. 차 막히니 빨리 오라고 하고 끊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차가 계속 막히고 아빠는 식당에가서 먼저 시켜놓으라고 했다. 집에서 먹을거고 다 만들어놨다고 하니 계속 맛있는거 사주려고 했는데 늦을거 같으니 먼저 밥을 먹으라고 했다. 결국 아빠는 6시 20분이 다 되어서야 도착을 했다. 오랜만에 다정한 부녀의 시간을 기대했는데 현실은 밥조차 같이 먹지 못했다. 아빠가 너무 늦어 급하게 먹다가 체할까봐 먼저 천천히 밥을 먹었다. 만삭에 가까운 몸이라 장기가 계속 눌리고 있어 급하게 먹으면 약도 없고 몸에 무리가 많이 간다. 다행히 아빠는 요리를 잘한다며 맛있게 먹어주었고 늦지 않게 특강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요즘 1g의 용기를 읽어서인지 한비야작가님의 강연에 기대가 컸고 에너제틱하고 열정적인 강의에 시간가는줄 모르고 재밌게 들었다. 물론 책이나 방송 등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던 내용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또 직접 라이브로 들으니 재미있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강연내용에서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현재 한비야를 있게 한 3가지 키워드는 세계지도, 산, 일기장이라고 말씀하시며 부모님이 세계에서 활동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세계지도를 집안 곳곳에 붙여놓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세계가 만만했고 어느날 지도를 보니 지도가 다 연결이 되어 있어서 걸어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젠가는 꼭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결심을 초등학교 2학년 때 하게 되었다고 했다. 결국 33살에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이 여행은 6년간 지속되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3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첫째, 육로로만 다닐 것 (대륙당 비행기 1회 수준으로 최소) 둘째, 오지로 다닐 것, 마지막으로 혼자 떠날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같이 갈 사람을 구하지 말고 혼자라도 일단 시작하라고 하셨는데 비슷한 시기에 세계여행을 가겠다는 친구는 아직도 같이 갈 사람을 찾고 있고 여행을 실행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계획이 거창하더라도 실행하지 못하면 그저 그런 인생을 살게 된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한참 망설이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기에 조금 뜨끔해졌다. 그나마 딩턴이를 가지고 태교를 위해 처음 시작했던 순산체조부터 필라테스도 재봉틀, 메이크업 강의까지 실행하고 있는 요즘을 되돌아보면 역시나 혼자서 하더라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비야 작가는 오지를 여행하는 동안 3초에 한 번씩 아이들이 굶어 죽는 모습을 보고 전 세계 식량은 많지만 배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월드비전에 들어가 NGO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여행 중에 그런 모습을 보게된 것은 그냥 남을 도와주는 성향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를 1시간정도 이야기 하시고 마지막에는 용기에 대해 20분 강연을 하셨다. 책 제목이 1g의 용기인 이유는 할까말까하는 50:50 상황에서 1g의 용기만 할까쪽에 얹어 놓으면 그 일은 하게 되어있다고 그래서 사실 용기는 1g 정도의 작은 양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셨다. 15살 때 반정부기자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공기관 임시직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바로 윗 상사에게 엄청난 갑질을 당했다. 이름 대신 "야" 라고 불리우고 니까짓게 커서 뭐가 된다고 등의 폭언을 퍼부었는데 그 때마다 작가님을 지탱해준 것은 일기장이었다. 속상했던 마음을 일기장에 적어놓았는데 그 일기 구절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더욱 단단해 질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1만원 (당시 가장 큰 화폐단위, 현재 5만원)짜리다. 구겨져도 1만원 버려져도 1만원, 어떤 형태로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1만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등의 당시 19세의 작가님의 마인드가 상당히 조숙했던 것 같다. 또 할까말까할 때는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먼저 하는 것 3가지는 첫째, 남을 도울까 말까 고민할 때는 돕는다. 둘째, 배울까 말까 할때는 배운다. 셋째, 놀까 말까 할 때는 논다였다. 하지 않는 것은 첫째, 물건을 살까 말까 할때는 사지 않는다. 둘째, 여행가방을 쌀 때 가져갈까 말까 하는 것은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6년간 배낭 하나 매고 오지 생활을 해왔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생존에 필요한 물품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셨다. 위험한 현장에 가서 사람을 돕는 다는 것은 작은 체구의 여성이 하기에는 두려운 일이지만 이 일이 나를 뛰게 한다고 말하는 한비야 작가는 정말 긍정적이고 행복해 보이셨다. 강연을 마치면서 다음에 만날 때 아는척 해주시고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합니다."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자고 과제를 주고 가셨는데 나한테 그런 일은 뭘까? 아마도 그 때쯤은 우리 딩턴이를 키우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딩턴이를 키우며 나 자체를 위해서도 가슴이 뛰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강연을 마치고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하면 전화하라고 한 후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제 버스를 탔다고 한다. 술을 좀 마신 것 같아서 도착시간에 맞춰 터미널로 데리러 갔다. 배가 떙기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눈으로 보고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어서 나가길 잘 한 것 같다. 가는 길에 팬케익이랑 밀크티를 먹고 싶었는데 19티 문을 닫아서 먹을 수가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앞으로 딩턴이가 태어나고 몸조리하는 동안 외출도 불가할텐데 남편이 술을 마신날에는 데리러 갈 수가 없어서 불안할 것 같다. 내가 외출하지 못하는 동안에는 좀 가격이 나가더라도 대리운전을 불러서 집에 무사히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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